무역 심리학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7월 22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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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그의 모습 뒤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공정무역, 친환경 패션을 주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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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업계는 오랜 세월 동안 환경 보호 단체와 대립해 왔다. 지나친 유행 추구를 조장하는 모습이 친환경 기업들과 상극을 걷는 듯 보였던 것. 하지만 이제 패션 업계도 환경 보존이 지구촌 최대의 관심 사업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소비자들도 친환경, 오가닉 제품들을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친환경적인 패션 디자인을 추구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폐기물을 수거하여 신소재를 개발하거나 환경에 최소한의 해를 입히는 생산을 추구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친환경 패션을 주도하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바로 공정무역 패션이다.

에디터 | 차고운 객원기자([email protected])
사진제공 | Della, Rising Tide Fair Trade

한국의 커피 소비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커피 소비 시장 기준으로 거래 금액이 작년에 3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고 관련 서적이 연일 출간되며 대중 문화에 있어서도 커피가 관심의 주체에 이르게 되었다. 비싸면 5,000원을 훌쩍 넘는 커피 한 잔 속에 숨어 있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커피 한 잔을 5,000원 주고 마신다 해도 커피 농가에 돌아가는 돈은 250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 돈은 어디로 빠져 나가는 것인가.

커피를 주로 판매하게 되는 선진국과 커피를 생산하는 제 3세계 국가의 불공정한 거래로 인해 전세계 많은 이들이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있다. 저개발국 생산자들의 노동력을 정당한 몫으로 보장해 준다면 수많은 이들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공정무역이다. 제 3세계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해 주어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자립을 보장해 주는 대안 무역이며, 이는 1960년도에 영국 시민 단체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정무역의 고향인 영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공정무역 즉, 페어 트레이드(Fair Trade) 캠페인을 펼쳐 왔으며 현재는 영국 인구의 반 이상이 공정무역 제품의 소비를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물품 에서도 커피, 차 등 식품을 비롯 옷 등의 잡화까지 다양한 물건에서 공정거래 마크를 찾아볼 수 있다. 기업들도 공정거래에 앞장 섬으로써 친환경 기업으로의 이미지 쇄신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5월 12일은 세계 공정 무역의 날이었다. 매년 5월에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행사로 올해 한국에서는 서울 시청 및 덕수궁 돌담길 근처에서 페스티벌이 열렸다. 특별히 올해는 서울시와 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의 공동 주체로 서울시 공정무역도시 추진 선언을 했다고 한다. 아직 우리 나라에 공정 무역이 깊게 뿌리 내리지 않았기에 많은 업체가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매년 의미 깊은 행사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공정 무역의 중요 원칙 중에 친환경 생산과 환경 존중 이념이 들어가는 만큼 한국에서도 공정무역이 잘 자리잡고 그린 디자인 기업들과 끈끈하게 융합되기를 기대해 본다.

커피 등의 공정무역 상품은 이제 꽤 많이 알려져 한국에서도 구매하기 어렵지 않다. 그와 다르게 조금씩 그 범위를 확장해 가는 분야가 바로 패션이다. 사실 패션 업계는 오랜 세월 동안 환경 보호 단체와 대립해 왔으며 지나친 유행 추구를 조장하는 패션 분야는 친환경 기업들과 상극을 걷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제 패션 업계도 환경 보존이 지구촌 최대의 관심 사업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소비자들도 친환경, 오가닉 제품들을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에코 디자인 바람이 불며 친환경적인 패션 디자인을 추구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폐기물을 수거하여 신소재를 개발하거나 환경에 최소한의 해를 입히는 생산을 추구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공정무역 패션 또한 주목 받고 있다. 주로 패션 분야에 있어서도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들이 공정무역의 방식으로 생산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공정 무역 패션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눈을 돌려 외국 패션 업계에서 공정 무역 생산으로 점점 그 이름을 알려가는 업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의 두 업체로 델라(Della) 그리고 라이징 타이드 페어 트레이드(Rising Tide Fair Trade)이다.

미국의 공정무역 브랜드인 델라(Della)는 아프리카 가나의 여성 장인들이 직접 제작한 친환경 소재의 무역 심리학 가방을 선보인다. 자원 봉사차 가나에 들른 티나 탄가라키스(Tina Tangalakis)는 그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꾸는 만남을 갖게 된다. 바로 현지 재봉사인 베아트리스 아가베(Beatrice Agabe)를 만난 것이다. 아름답고 에스닉한 프린트의 가방을 인상적으로 보게된 티나는 베아트리스와 공정무역 기업 델라의 시작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델라 디자인 가방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클래식 호보 스타일이다. 각각의 특별한 프린트들은 모두 가나 현지의 텍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상품들은 베아트리스의 감독 하에 가나의 여성들에 의해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3명 중 1명이 극빈층이라고 알려져 있는 가나에 델라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재봉 기술 교육을 시키는 등으로 이들 사회에 기여 하고 있다. 상품은 가방, 클러치, 태블릿PC 케이스, 헤어밴드 등이며 우아하고 유니크한 프린트와 실용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


라이징 타이드 페어 트레이드(Rising Tide Fair Trade)

미국의 비영리 친환경 시민단체 그린 아메리카(Green America)의 승인을 받은 라이징 타이드 페어 트레이드(Rising Tide Fair Trade)는 공정무역 업체로 패션 잡화 상품을 판매한다. 다양한 저개발 국가의 장인들과 함게 일하며 1%의 수익금은 사회에 환원한다. 설립자인 버지니아 두울리(Virginia Dooley)와 니콜 존스(Nicole Jones)는 친구 사이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 다양한 장소로 여행을 다니다 공정 무역 사업에 눈을 뜨게 무역 심리학 되었다.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프린트에 매료된 이들은 지구촌 곳곳의 매력적인 텍스타일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라이징 타이드 페어 트레이드의 파트너는 사샤월드(SASHA World)라고 불리는 생산업체로 인도 전역의 100개 이상의 생산자 그룹을 마케팅하는 비영리 단체이다. 사샤월드를 무역 심리학 통해 연계된 장인들이 퀄리티있는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상품들을 라이징 타이드 페어 트레이드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에서 들어 화제가 된 호보백을 비롯하여 메신저백, 크로스백, 클러치 등 다양한 디자인의 가방을 보여준다.

무역 심리학

메신저 프로필 사진 속 강진묵 학생(심리학과 4)은 형형색색의 불빛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가기 무역 심리학 전 기자는 그가 예술가의 삶을 꿈꾸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미래의 상사맨을 꿈꾸고 있었다. 한때 래퍼 겸 기타리스트가 되고자 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접고 무역의 세계로 뛰어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평범한 그의 모습 뒤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상사맨’을 들어봤는가. 이 단어는 상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는 상사맨들은 슈퍼맨 같은 존재다. 강진묵 학생은 무역에 매력을 느끼며 상사맨을 꿈꾸게 됐다. 4학년 때 취업준비를 시작한 그는 무역에 늦게 입문한 만큼 더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은 한국무역협회에서 운영하는 무역마스터 과정을 이수한 뒤 해외 영업사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정은 만국공통어
그는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베트남에서 보냈다. 중학교 2학년 때 베트남으로 해외 파견 근무를 나간 아버지를 보러 갔다가 예상보다 오래 머무르게 된 것이다. 처음 정착했을 때는 낯선 환경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그가 다닌 국제학교 담임 선생님의 말이 큰 도움을 줬다. “선생님께서 마음을 열고 친구들과 친해지라고 무역 심리학 조언해 주셨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죠. 친구들과 대화하며 영어를 많이 배웠는데 6개월쯤 지나니까 대화를 자유롭게 주고받게 되더라고요.” 영어가 익숙해지면서 베트남 생활도 자연스레 적응했다. 베트남에서의 4년은 그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친구들과 열심히 놀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베트남에서는 행복이 성적순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학업에 대한 부담이 적었거든요.”


한여름 밤의 꿈을 꾸다
베트남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학교 행사 중에 밴드 경연 대회가 있었어요. 학년마다 2~3개의 밴드가 나와서 공연을 하는데 멋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는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부모님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님의 생각은 ‘일단 대학에 가야 한다’였고 저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였어요. 음악 활동에 대학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그는 부모님 몰래 음악을 했다. “고등학생 때 독서실 간다고 받은 돈으로 CD나 필요한 장치를 샀어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온 척하고 오후 11시쯤 집에 들어갔죠. 부모님이 물으시면 공부하고 왔다고 둘러댔어요.”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그는 중앙대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순전히 음악 때문이었다. “제가 존경하는 ‘키비’라는 래퍼가 중앙대 심리학과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심리학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리학이 랩 할 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인간의 심리와 감정 묘사를 잘하게 되면 랩 가사를 쓰는 것이 수월할 테니까요.”

대학에 온 그는 음악에 더욱 매진했는데 주로 랩과 기타 연주를 했다.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랩 공연을 하는 동시에 소속사를 찾아다니며 자작곡을 홍보했다. 하지만 길거리에 머무는 날만 많아질 뿐 빛은 보이지 않았다. “저보다 더 재능 있는 친구들도 길바닥에서 허덕이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결정적 계기가 생겼죠. 친구와 팀을 이뤄 소속사 오디션을 봤는데 둘 다 받아줄 수는 없다며 한 명은 포기하길 권유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한계를 무역 심리학 느끼고 있던 터라 결국 그는 음악을 그만두고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은 결국 한여름 밤의 꿈이 되고 말았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음악을 포기했을 때 그는 4학년 1학기에 재학 중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취업 무역 심리학 준비를 시작한 만큼 마음이 급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봤어요. 학내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적성검사를 받았죠. 검사를 하다 보니 영업직이 제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영어와 세일즈를 접목한 무역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죠.” 마침 주변에서도 그에게 무역업에 종사하라고 권했다. 용기를 얻은 그는 무역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시작은 ‘대학생무역실무특강’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무역협회 산하의 무역아카데미를 알게 된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2주짜리 대학생무역실무특강을 수강 신청했다. “일종의 맛보기 코스였어요. 무역이 어떤 것이고 산업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 기초 지식을 배웠죠.” 그는 무역의 가능성을 보았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를 고려했을 때 무역업은 절대 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역이라는 큰 틀 안에서 저만의 강점을 기르면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겠더라고요.”

다음으로 도전한 것은 ‘무역마스터’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그는 4학년 2학기 대신 휴학을 선택했다. 여기서는 무역과 관련된 법, 보험, 세계 무역 시장의 동태 등 실전용 지식을 6개월에 걸쳐 배웠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수업을 듣고 밤 8~10시까지 자습을 했어요. 처음에는 교수님 설명이 이해가 안 되고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역마스터 과정을 시작하면서 한 결심이 그를 버티게 했다. 사실 무역마스터 수강생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 그는 반신반의했다. “제가 무역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어요. 6개월이나 되는 과정을 시작했는데 제 길이 아니면 어떡할지 걱정이 많이 됐죠.” 그러나 그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실패는 남을지언정 후회는 하지 말자’라는 다짐을 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자기주도학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배우는 자기주도학습을 저는 대학교 마칠 때 했어요.”

▲ 무역마스터 과정을 수료한 동기와 이별의 아쉬움을 사진에 담았다.

6개월 과정이 끝나갈 때쯤 그동안 쌓아둔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생겼다. “수강생들이 조를 짠 뒤 가상 무역을 실전처럼 해 보는 대회가 열렸어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죠.” 그는 이 대회를 준비하며 시장조사, 물건의 수량과 품목 선정, 구입·판매 경로 탐색, 선박 운임과 보험 조사 등 무역의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막내였지만 조장을 맡은 그는 조원들을 존중해 업무를 분배했다. “10명이 넘는 조원 모두에게 똑같은 열정을 요구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열정이 부족한 조원들에게는 인터넷에서 금방 찾을 수 있는 자료를 부탁했죠. 그 밖의 다른 조원들은 본인과 맞는 분야를 찾아서 자신 있는 부분을 맡게 했어요.” 또한 적극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시뮬레이션 해볼 무역은 베트남에서 커피를 수입하는 것으로 정했다. 무역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 막막해 하던 차에 운이 좋게도 1주간 베트남 시장조사를 가게 됐다. “베트남의 커피 생두 판매자들과 미팅을 하면서 대략적인 감을 잡았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그때 알게 된 가격과 수입 경로들을 이용해 과제를 진행했죠. 국내 생두 유통업자들을 찾아가 유통경로를 조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고요.”

그의 조가 가진 강점은 ‘저렴한 가격’이었다.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사오기 위해 보험 비용도 낮췄다. “베트남에서 보험을 들면 한국보다 훨씬 싸거든요. 계약 조건을 바꿔 물건 가격을 조정했어요.”


그러나 시뮬레이션 대회의 결과는 6조 중 3위였다.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지만 그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등수가 아니라 과제를 완수했다는 거니까요. 무역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등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 무역마스터 강의를 함께 듣는 동기들과 베트남에서 남긴 특별한 추억.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그는 다시 무역 회사에 지원서를 무역 심리학 제출했다. 얼른 취직해 해외 영업 부서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다. “직접 발품을 팔아서 여러 일을 배우고 싶어요. 저의 능력이 회사에 이득이 되고 가치를 창출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장기적인 목표는 어떤 물건이든 언제 어디서나 잘 파는 실무적인 무역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베트남 시장에 한국 상품을 수출하는 것도 꿈꾸고 있다.

편하고 좋은 근무환경을 원하는 다른 취업준비생들과 달리 그는 ‘사서 고생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현실에 안주해 돈을 버는 것은 재미없다고 여기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원한다. “도전을 많이 하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거든요. 이것이 바로 제가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이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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